연구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그리고 이번에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살면서 저의 기초 실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학부과정 중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연구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저는 우물 안의 개구리 었다는 것을, 내 실력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형대수, 통계는 말할 것도 없고 머신러닝과 딥러닝은 정말 베이스라인 정도만 할 수 있는 실력이란 걸 알게 된 뒤 좌절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스터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스터디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스터디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같이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하는 친한 동생과 함께 세세하게 스터디 커리큘럼을 짜고,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 같은 학과 사람들을 모아 스터디를 만들었습니다. 도움을 주겠다는 선배들도 있었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기에 스터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 스터디의 커리큘럼은 처음 2달간 수리적인 기초를 쌓은 뒤, 머신러닝/딥러닝 이론과 간단한 구현을 공부하고 마지막에는 PRML 책으로 화룡점정을 찍는, 차근차근 쫓아간다면 발전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리는 커리큘럼이었습니다. 그렇게 팀원들과 첫 번째 미팅을 가지고 한주 한주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스터디는 실패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실패한 것을 알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스터디를 실패하게 만들었을까?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의 열정이 부족했던 것인가? 학교 사람들만 모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것보다는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원인 분석에 들어갔고, 우리의 스터디에 부족했던 3가지 요소를 도출해 보았습니다.
1. 스터디의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고 흔들렸다.
처음 저희 스터디의 목표는 선형대수와 통계 공부를 마친 뒤, 머신러닝 강의를 들으며 개념을 잡고 PRML이라는 교재를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타깃은 대학원을 준비하거나, Advanced 된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었고요. 하지만 막상 스터디원을 모으고 나니 모두가 스터디에서 얻어가고자 하는 내용이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리적인 내용을 더 공부하고 싶어 했고, 다른 사람은 방학 동안 파이썬으로 머신러닝을 해보기 또는 실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보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스터디 첫 모임날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스터디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과 샴푸 향처럼, 계속 방향성을 바꾸었습니다. 방학 때 얻어가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을 위해서 선형대수와 통계를 미루고 머신러닝 이론과 딥러닝 프레임워크를 먼저 공부했고, 당연하게도 머신 러닝 이론에서 나오는 선형대수 부분은 간략하게 다루거나 건너뛰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스터디를 했지만 제가 처음 느꼈던 기초 능력의 부족은 여전했으며, 이는 제가 실패한 스터디라고 느낀 결정적인 계기 었습니다. 제대로 된 스터디라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액션 플랜을 설정한 뒤, 하나하나씩 이루어 나갔겠지만, 저희의 스터디는 목표가 흔들림으로써 매주 진행하는 내용이 흔들리고 산만해졌습니다.
2. 매주 공부를 할 수 있는 동기 혹은 강제성을 제공해 주지 않았다.
저희의 스터디는 진도표가 있고 공부는 자율적으로, 한 명씩 매주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모든 스터디원들이 자신이 한 과제를 Notion에 업로드하고 각자 발표하고자 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진도표에 나온 만큼 공부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느슨해졌고, 공부 혹은 과제를 매주 해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열심히 하던 사람들은 의욕을 잃고, 자주 해오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낙오되어버려 스터디 전반적으로 텐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3. 적극적인 의견교류가 일부 스터디원 간에만 이루어졌다.
제 상상에서 존재하던 스터디는, 한 가지 궁금한 주제가 나오면 모든 스터디원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내며, 결국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혼자서는 생각해내지 못하던 아이디어가 나오고 다음 모임까지 다 같이 찾아오고 추가적인 공부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일어나긴 했지만 몇몇 팀원끼리만 이루어졌습니다. 스터디에 참여한 몇몇 인원들은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다른 일을 하기도 했고 스터디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이야기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궁금한 점을 공론화하여 이야기하는 게 꺼려지고 그렇게 점점 말이 없어지는 스터디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의견 교류와 관련해서 사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스터디원들의 수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아등바등해나가는 스터디를 하느냐 아니면 뛰어난 한 사람이 리딩 하는 스터디를 하느냐. 스터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대해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고 선호도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원래 직급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의견을 나누는 편이라 저보다 높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박사님이거나, 교수님이거나, 혹은 사장님이어도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의견을 구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스타일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작아지고 물어보기가 겁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스터디원의 성향에 따라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실력의 사람이 두 명 이상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두 명 이상이라면 서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서로에게 배워갈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리딩 해볼 수 있는 경험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명만 있다면 고독함을 느끼며 자원봉사를 하게 될 것 같기에 그럴 바에는 모두가 비슷한 실력인 것이 좋아 보입니다.
잘 읽어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이 모든 것은 스터디장의 잘못입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욕만 앞섰고 교재 파악 등의 준비가 미흡했던 점도 인정합니다. 이번 스터디를 통해서는 지식적인 점보다는 팀 활동을 할 때 팀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 만드는 스터디에서는 이런 일은 없겠지요.
그래서 3월부터는 새로운 스터디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제가 만들 수도, 혹은 기존의 스터디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이번 스터디를 통해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번에는 조금 더 좋은 스터디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글을 읽어 보시고 공감되시는 내용 이외에도 스터디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나 과거 경험 같은 의견을 남겨주셔서 모두 같이 의견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스터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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